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최고 시청률 26.9%를 기록하며 지난해 12월 종영했어요. 대한민국의 1980년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데요. 특히 배우 이성민은 순양그룹의 창업주 진양철 회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많은 화제를 모았죠.
진양철 회장은 인천 정미소에서 시작해 순양을 재계 1위에 올려놓은 인물이에요. 진양철 회장에게는 가족보다도 순양이 먼저일 정도로, 자신이 일궈온 순양이 항상 1순위였어요. 결국 순양은 드라마 속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이뤄내는 데 큰 역할을 하죠. 승부근성과 결단력, 가차 없는 냉혹함까지 기업가의 면모를 갖춘 진양철 회장의 모습은 실제 대한민국 많은 기업가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 정미소에서 시작해 순양을 재계 1위까지 키우다니 진양철 회장은 대단한 사람이네령.. 진양철 회장처럼 사업에 야심을 품었던 인물에 관한 작품이 있다는데령?
▲ 연극 <리먼 트릴로지>, 출처: 국립극장
우리는 리먼 브라더스👨👦👦
리먼 삼형제인 헨리, 이매뉴얼, 메이어는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1844년 독일 림파르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요. 작은 직물 가게를 차려 ‘리먼 브라더스’라는 상호로 간판을 내걸고 사업을 시작한 리먼 삼형제는 대규모 화재와 남북전쟁*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사업 규모를 키우죠. 3대를 거치며 리먼가의 야심은 점점 커지고, 리먼 브라더스는 세계적인 투자 은행으로 성장해요. 그 과정에서 대공황은 리먼 브라더스가 도약할 또 한 번의 기회가 된다고.
*남북 전쟁: 1861년부터 1865년까지 4년 동안 미국에서 벌어진 내전으로,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를 폐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사건.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함께 시작된 국제 금융 위기는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속성과 한계를 드러낸 충격적인 사건이었어요. 독일 출신 이주민 리먼 형제가 미국에서 면화 판매상으로 시작해 은행업으로 사업을 확장해 가는 160여 년에 걸친 장구한 이야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발전했고, 결국 어떻게 실패했는지 보여 주죠. 작가 스테파노 마시니는 방대한 자료 연구를 바탕으로 리먼 브라더스 가족사와 자본주의 역사를 극적인 대서사로 완성했다고.
👻: 160여 년에 걸친 이야기를 하나의 희곡에 담아내다니.. 대단하네령! 그런데 희곡 <리먼 트릴로지>는 형식이 매우 특이하다고 하는데령?
▲ 연극 <리먼 트릴로지>, 출처: 국립극장
세상은 넓고 <리먼 트릴로지>는 다양하다 🌏
<리먼 트릴로지>는 다른 희곡들처럼 스크립트 형식을 취하지 않아요. 스테파노 마시니는 리먼가 이야기를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처럼 일종의 대서사시로 보이도록 썼는데요. 배역을 명시하지 않고 대화가 아닌 서사 중심으로 극을 완성했다고 해요. 그래서 연출의 해석에 따라 규모와 스타일이 매우 다른 공연이 되죠. 실제로 전 세계에서 다양한 버전의 <리먼 트릴로지>가 공연되었는데요. 프랑스 초연 때는 일곱 명의 배우가 출연했고, 독일에서 공연될 때는 네 명의 배우가 출연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열두 명의 배우가 다섯 시간에 걸쳐 공연하기도 했죠. 샘 멘데스가 연출한 영국국립극장 공연에서는 단 세 명의 배우가 세대와 시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기도 했다고.
스테파노 마시니가 <리먼 트릴로지>를 이처럼 형식 파괴적이고 서사적인 접근 방식으로 완성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해요. 작가는 텍스트를 이야기를 구성하는 원초적인 연극적 소재이자 구성 요소로 보고 연출가와 배우들이 이를 생동감 있게 표현할 방법을 찾도록 했어요. <리먼 트릴로지>에서 대화는 3인칭 내레이션으로, 내레이션은 뉴스로, 뉴스는 시로, 시는 재치 있는 코미디나 고전 서사시, 심지어 비극으로 전환되죠. 하지만 복잡해 보이는 텍스트는 장면이 품고 있는 정신과 본질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데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관객이 직접 상상력을 발휘해 창작에 기여하도록 만들기도 한다고.
👻: 연출의 해석에 따라 스타일이 달라지는 공연이라니 너무 보고 싶어령! 이번에도 지만지드라마 편집자님께서 칼럼을 남겨주셨어령~
💁: 연극 <리먼 트릴로지>는 국립극장이 영국국립극장과 제휴해 선보였던 NT라이브*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 처음 소개되었는데요. 영화 <1917>로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후보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경쟁했던 샘 맨데스가 연출을 맡았습니다. 우리에겐 <아메리칸 뷰티>, <007 스카이폴>, <1917>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으로 더 익숙하지만 샘 멘데스는 사실 연극 연출로 먼저 명성을 얻은 연출가였어요. 샘 멘데스의 연극을 본 스티븐 스필버그 추천으로 <아메리칸 뷰티> 연출을 맡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고 해요. 그리고 2022년, 연극 <리먼 트릴로지>는 최고감독상을 비롯해 5개 부문을 수상하며 최고 연극으로 떠올랐어요.